학교소개

섬학교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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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    장:  강제윤(시인, 섬여행가)
    주    제:  한여름 녹음방초! 여수 꽃섬으로 소풍 가요
    기    간:  2020년 7월 4(토)-5(일)일, 1박2일
    참가비:  28만원

강의계획

한여름 녹음방초! 여수 꽃섬으로 소풍 가요

2020년 7월 섬학교는 <여수 꽃섬 하화도>

 

*코로나19 상황이 안 좋아져 6월 강의(제91강)를 휴강하고 7월 강의로 준비합니다.

*버스 안 거리두기를 위해 이번 강의는 참가자 19명으로 제한합니다.

*코로나19 관련,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본인 또는 가족이 14일 이내 국내외 감염지역 방문을 한 경우 참가를 자제하는 등 코로나19 예방수칙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섬은 집에서 밥해 먹는 사람이 없어요.” 여수의 꽃섬, 하화도는 모든 주민들의 세끼 식사를 마을식당에서 해결해줍니다. 섬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섬의 부녀회에서 마을회관을 마을식당으로 운영하면서부터 생긴 일이지요. 부녀회원들은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마을주민들 모두에게 밥상을 차려줍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은 섬.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해결하는 노인은 드물었습니다. 대충 때우기 일쑤였죠. 그런데 마을식당이 생기면서 돈도 벌고 다 함께 밥도 해서 나눠먹으니 온 섬마을이 더욱 밝고 건강해졌습니다. 부녀회원들은 “우리 돈 욕심 부리지 말자”고 한답니다. 그저 함께 밥을 해먹고 어울려 사이좋게 사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지요. 이 마을식당이야말로 꽃섬 하화도의 진짜 꽃입니다.

 


▲‘아래꽃섬’이란 이름처럼 하화도는 밝고 화사한 섬이다.ⓒ섬학교

마을공동체의 아름다운 정신이 살아 있는 섬. 7월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 제91강은 7월 4(토)-5(일)일, 여수의 꽃섬 하화도로 갑니다. 하화도는 섬을 일주하는 둘레길이 더없이 평탄하고 유순합니다. 느릿느릿 해찰을 부리며 걷기에 더없이 좋은 섬길. 6km의 하화도 둘레길은 걷는 내내 여수 바다와 섬들을 마주할 수 있는 환상적인 트레일입니다. 걷기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지요.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합니다. 섬은 자동차가 주인이 돼버린 세상에서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사람의 길입니다. 섬의 길은 무중력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다 내려놓게 만들지요. 무중력의 섬,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꽃섬으로 소풍 떠나실 분들을 초대합니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2020년 7월의 걷는 섬 <여수 하화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섬에서 만난 고물장수

여객선 안에서 이 시대 마지막 엿장수를 만났다. 엿장수이자 고물장수인 노인은 여수의 섬으로만 다닌다. 그에게 섬은 보물섬이다. 섬 주민들이 내다버린 고철이나 구리, 알루미늄, 밧데리, 양은냄비 등이 그가 찾는 보물이다. 그는 섬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광맥을 찾는다. 오늘은 어느 섬에서 피복이 타고 남은 전선줄에서 가장 값비싼 구리를 얻었다. 고철은 1kg당 170원에 불과하지만 구리는 4천원이나 된다.

 

노인은 오랫동안 과일행상을 하다가 그만두고 15년간 어선을 탔으나 “뱃밥 먹는 게 징해서” 그 또한 그만두고 시작한 것이 고물 수집이다. 섬이 좋아 노인은 15년 동안 뭍은 버리고 섬으로만 다녔다. 노인은 섬 주민들이 버린 고물을 줍기도 하지만 "고물이여, 고철" 외치고 다니며 사들이기도 한다. 섬 주민이나 그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작은 섬에서도 보통 하루 10만원어치 고물은 거뜬하다. 경비를 제외해도 절반 정도는 남는다. 섬 길을 다니는 노인의 길동무는 4만원짜리 중국산 카세트다. 중국산이지만 성능은 좋기만 하다고 자랑이시다. "사랑이란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는 게 사랑뿐일까 마는 노인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건들건들 섬 길을 걷는다. 노래가 없었으면 그 고독한 섬 길을 또 어찌 걸었을까.

 

여름에는 녹아버리는 통에 가지고 다닐 수 없지만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노인은 내내 엿도 싣고 다닌다. 짤랑짤랑 가위를 치며 다니는 진짜 엿장수가 되는 것이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붙박이로 파는 엿장수 말고 엿목판을 매고 떠돌아다니는 진짜 엿장수의 모습은 요즘 아주 희귀한 풍경이다. 나그네도 어느 날쯤 엿목판을 메고 노인을 따라 나서봐야겠다.

 

하화도 선창가에 내리니 물량장 한 켠에 노인 한 분이 쪼그려 앉아 있다. 섬은 나날이 늙어간다. 노인은 어로에 쓸 그물을 손질 중이다. 물고기뿐이랴. 노인의 생애도 그물에 걸려 있으니, 생애의 바다에서는 물고기도 노인이고, 노인도 물고기다.

 


▲하화도는 시원하면서도 여수바다만의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바다의 모습을 보여준다.ⓒ여수시

 

모든 주민에게 밥상 차려주는 섬

“우리 섬은 집에서 밥해 먹는 사람이 없어요.”

꽃섬, 하화도 사람들은 집에 밥을 해먹지 않는 것이 자랑스럽다. 모든 주민들의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마을식당에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섬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섬의 부녀회에서 마을회관을 마을식당으로 운영하면서부터 생긴 일이다. 부녀회원들은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팔아 얻은 수익으로 마을주민들 모두에게 밥상을 차려준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많은 섬.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해결하는 노인은 드물었다.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런데 마을 식당이 생기면서 돈도 벌고 다함께 밥도 해서 나눠먹으니 온 섬마을이 더욱 밝고 건강해졌다. 부녀회원들은 “우리 돈 욕심 부리지 말자”고 한다. 그저 함께 밥을 해먹고 어울려 사이좋게 사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마을주민들 밥해주고도 남는 수익은 부녀회원들이 균등 분배한다. 이 마을 식당이야말로 꽃섬의 진짜 꽃이다. 진정한 마을식당, 공동체의 식당이다. 다른 섬들, 다른 마을들이 배워야 할 아름다운 마을식당이다.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섬의 공동체가 파괴된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만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서로 반목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주민들끼리 백 건이 넘는 고소고발로 지옥이 된 섬도 있다. 그런데 하화도는 개인들의 욕심을 제어하고 공동체가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섬이 이토록 공동체성을 회복하니 여수에 나가 살고 있는 출향인들 70여 명도 퇴직 후에는 고향 섬으로 돌아와 살겠다고 한단다. 모두가 돌보고 모두가 돌봄을 받는 여생을 누린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국가도 못하는 일을 작은 섬마을 공동체가 이루어 냈다. 공동체성의 복원, 이것이야말로 도시 재생, 마을 재생의 근본정신이 아닌가! 그래서 하화도 부녀회를 따라 배우러 오는 마을들도 많다. “전국에 소문난 부녀회요.” 부녀회원들의 자부심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이 섬을 찾는 이유

하화도는 여수의 대표적인 관광 섬 거문도나 금오도 못지않게 각광받고 있다. 하화도의 트레이드 마크는 꽃이다. 섬 이름의 뜻이 꽃섬인 것을 적극 활용해 섬을 꽃으로 상징화했다. 그래서 하화도는 섬 곳곳에 꽃들을 심어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0.71㎢에 불과한 섬에 해마다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2017년에는 7만6천 명이나 다녀갔다. 요즘도 주말이면 “섬이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려와 북적거린다. 꽃길을 걸으려는 인파가 주말이나 성수기면 1천5백 명씩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도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니 하화도에는 민박 펜션도 생기고 식당도 생기고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마을식당도 생겼던 것이다.

 

꽃섬은 하나가 아니다. 1km의 거리를 두고 상화, 하화 두 섬이 나란한 형제 섬이다. 상화도는 위꽃섬, 하화도는 아래꽃섬이다. 섬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인 2001년 송일곤 감독의 영화 <꽃섬>이 하화도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꽃섬. 그 이름의 힘이 영화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꽃섬이란 이름은 하화도만의 것은 아니다. 이 나라에는 꽃섬들이 많기도 하다. 어디 세상에 꽃이 한 종뿐일까! 고흥의 상화도 하화도, 신안의 화도, 거제의 화도, 완도의 화도, 태안의 화도 등이 모두 꽃섬이다. 다들 꽃이 많아서 화도라 했다는 유래가 전하지만 옛날에 꽃이 많지 않은 섬이 어디 있었으랴. 어느 섬이나 야생화가 지천이었을 텐데...

 

그래서 꽃섬들의 정확한 유래야 알 길이 없지만 요즘은 너도 나도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기 위해 꽃들을 심어 치장한다. 하화도는 섬의 형상이 소의 머리와 비슷하다 해서 한때는 ‘소섬’으로 불리기도 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섬은 꽃이 많아서라기보다 멀리서 보면 섬의 모습이 한 송이 꽃처럼 보여서 꽃섬이라 이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초봄 연초록 새순들이 솟아오르는 모습은 흡사 꽃과 같다. 그럴 때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한 송이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섬이라는 이름의 섬들이 한결같이 아주 작고 둥그스름한 섬들인 것을 보면 그런 추측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오랫동안 공도정책으로 비워져 있던 하화도에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무렵이다. 전란을 피해 들어온 이들이 정착하면서 섬은 다시 사람살이가 시작됐다. 처음 인동장씨가, 그 후 나주임씨, 파평윤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65가구 400여 명이나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겨우 26가구 43명이 살아간다. 사람들이 많이 살 때는 산 정상까지도 숲을 개간하여 밭농사를 지었다. 그 조막만한 땅에 고구마, 보리 심고 해초 뜯어 먹으며 살았다.

 

큰 나무들이 없으니 그 무렵에는 원추리, 선모초(구절초) 등 꽃들이 잘 자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숲이 우거지면서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이름만 남았다. 지금의 꽃들은 둘레길을 만들면서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다. 요새 하화도의 농사 중 가장 큰 것은 부추다. “여수에서도 하화도 부추는 알아줘요.” 하화도에서 오랫동안 목회 일을 하다 정년을 앞두고 있는 김영구 목사의 전언이다. 부추는 베어내고 또 자라면 내내 몇 번이고 수확할 수 있는 채소다. 하지만 하화도 부추는 봄에 딱 2번만 베어내 출하한다. 그러니 영양가가 높다. 한 해 두 번 베어내는 부추농사만으로 가구당 평균 300만원의 소득을 안겨주니 부추는 하화도의 효자다.

 


▲기암괴석이 절경인 하화도 출렁다리ⓒ섬학교

 

“둘레길이 순하다”

마을 뒤안을 따라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면 숲과 초지가 나타나는데 둘레길은 내내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다. 둘레길 오르는 길에 발전소가 있다. 하화도에 공급할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태양광 발전과 화력을 겸해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태양광 발전은 1994년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것이다. 60kw 규모. 10분 남짓만 가파른 길을 오르면 곧 걷기 평탄한 길이 펼쳐지고 둘레길은 탁 내내 트인 전망을 선물한다. 세 시간이 남짓의 길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걷기 편한 길이란 반증이다. 김영구 목사는 이를 “둘레길이 순하다”고 표현한다. 섬 뒤안은 드넓은 바다다. 그래서 뒤안은 깎아지른 절벽들로 이어진다. 하화도가 여수 장수만과 여자만 입구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하화도 뒤안이 오랜 세월 거친 풍랑에 맞서다 보니 살들은 발라지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것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큰산도 108m에 불과할 정도로 섬은 전체가 낮은 구릉으로 형성되어 있다. 요즈음은 해수면 상승으로 큰산의 높이가 104m로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근 사도 또한 주민들로부터도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가라앉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사도는 해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처럼 바다가 갈라져 인근 7개의 섬을 잇는 길이 나타난다. 1, 2월, 4, 5월 보름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는데 특히 2월 영등사리 때 가장 넓은 바닷길이 열린다. 사도에서 추도, 중도, 장사도, 나끝, 연목, 증도까지 7개의 섬들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져지는 장관이 연출된다. 하지만 사도 주민들은 해마다 물길 열리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증언한다. 해수면 상승 탓이다. 보령의 천수만 안의 섬들에서도 해수면 상승으로 물이 집 앞까지 차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수면 상승이 결코 머나먼 섬 나라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조사와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산비탈 아래 들어선 마을 위쪽은 선바구, 애민골, 가마패, 낭끝, 시짓골, 평바구, 딴녘, 순네밭넘, 막산, 문도 등이 있는데 작은 섬이지만 물은 늘 풍족해서 섬에서 가장 큰 불편인 물 걱정 없이 살아왔다. 근래에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됐던 자갈샘을 복원했더니 하루에 15톤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자갈샘 아래 45톤의 물탱크를 설치해 자갈 샘물을 받아 주민들이 사용 중이다. 물은 하화도가 가진 큰 복이다.

 

하화도 인근에는 장구섬, 부도, 소부도 등의 무인도가 있고 여뚱, 칠여, 낭끝바위 등이 있는데 이들은 섬 주민들의 소중한 살림밑천이다. 이 무인도와 바위섬에서 미역, 다시마, 톳, 우뭇가사리 등의 해초와 홍합 등의 조개가 서식하고 바위섬 주변은 농어, 솜뱅이, 놀래미, 서대, 문어, 멸치 등이 사철 잡혀서 소득에 보탬을 준다. 육지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저 쓸모없는 바위덩어리로 보일 뿐이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하화도와 곧 닿을 듯이 인접한 장구도는 무인도지만 옛날에는 1가구가 살았었다. 섬에 지네가 워낙 많아서 못 견디고 떠난 뒤 무인도가 됐다고 전한다. 섬의 모습이 장구를 닮았다 해서 장구섬이다.

 

하화도의 부속 섬인 무인도 부도에는 아주 흥미로운 사연이 깃든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작은 어선들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동굴은 1970년대 여수 통영 지역에 한창 밀수가 성행할 때 밀수선들이 금괴를 숨기던 곳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금괴 밀수를 해오던 무역선들이 단속선이 뜨면 재빨리 이 동굴 안에 금괴를 숨겼다고 한다. 1990년대 여수 세관에서 바다 밑을 탐색하기도 했다 하니 그저 뜬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금괴와 함께 녹용 밀수도 흔했는데 실제 총격 사건으로 세관원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1964년 통영항 녹용 밀수사건 때 상금 문제로 시비가 붙어 부산세관 감시과장이 권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만큼 밀수는 밀수꾼이나 감시자들에게 모두 황금어장이었다. 그 세관원들은 과연 부도 동굴에서 금괴를 못 찾았던 것일까?

 


▲하화도 앞바다 바위섬이 마치 웅크린 물개 같다.ⓒ섬학교

 

연륙교는 양날의 칼

여수엑스포 이후 화태도, 개도, 낭도, 둔병도 등 인근의 많은 섬들이 연륙교 공사로 육지에 편입되고 있다. 백야도는 진즉에 육지가 돼버렸다. 섬으로 가는 방법이 보다 다양해져야 한다. 연륙교만이 능사는 아니다. 연륙이 된 많은 섬들이 그냥 육지의 변두리로 편입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깝다. 섬에 다리를 놓는 것은 주민들의 열망 때문이다. 그 열망을 천번만번 이해한다. 하지만 연륙교는 양날의 칼이다.

 

교통의 편리를 얻은 대신에 섬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교통 불편 해소 방법이 꼭 다리 공사뿐일까? 섬 주민들이 다리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교통 불편 해소를 위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토건 자본의 이해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자동차 산업과 토건 자본을 부양하기 위해 철도 대신 자동차도로만 이중삼중으로 수도 없이 만들었던 상황과 같은 맥락이다.

 

외국의 경우 많은 섬 주민들이 다리 건설을 포기하고 섬의 정체성을 지키는 쪽을 택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형 여객선의 대형화, 전천후 여객선 도입, 야간 운항, 소형 비행기 운행 등으로 정부가 섬 주민들의 교통 불편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교통 불편도 해소하고 섬의 고유성도 지키고. 우리 또한 이런 정책들을 시급히 도입해야 마땅하다. 다리 공사가 끝나면 이 인근의 온전한 섬은 상화도, 사도 등 몇 개 남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화도가 가진 섬으로서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하화도를 지키는 일이다.

 

2020년 7월 4(토)-5(일)일, 섬학교 제91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7월 4일(토)>

08:00 서울 출발(07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91강 여는 모임

-여수 도착

-점심식사(화양면 <화양식당> 낙지볶음)

-백야도 출항

-하화도 도착

-하화도 둘레길 걷기(6km)

하화도선착장-휴게정자1-휴게정자2-순넘밭넘구절초공원-큰산전망대-깻넘전망대-꽃섬다리 -큰굴삼거리-막산전망대-큰굴삼거리-애림민야생화공원-하화도선착장

-저녁식사 겸 뒤풀이(마을회관)

-자유시간 및 취침(다인실)

 

<7월 5일(일)>

07: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섬밥상)

-하화도 출항

-백야도 도착

-예술 섬 장도와 장도미술관 탐방

-점심식사(여수 시내 <화양식당> 장어탕)

-선어시장 장보기

14:30 서울 향발. 제91강 마무리모임

*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7월의 섬학교 <여수 하화도> 걷기 지도Ⓒ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슬리퍼,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지참하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손 청결 등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실손보험 미가입자는 반드시 여행자보험에 가입해 만일에 대비하세요. 참고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여행자보험 사이트를 안내합니다.

http://openyourplan.com/OP/ 

*환경 살리기의 작은 동행, 내 컵을 준비합시다(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

 

▷7월 섬학교 제91강 <하화도> 참가비는 28만원입니다(지상 왕복교통비, 5회 식사 겸 뒤풀이, 1일 숙박비,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참가비 송금계좌 국민은행 730601-04-041406 문화문 인문학습원). 버스 좌석은 참가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은 현재 화면 상, 하단에 위치한 <참가신청> 아이콘을 누르시면 신청서 작성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회원가입 바로가기

▷참가문의는 전화 050-5609-5609/010-9794-8494번(월∼금요일 14:00∼18:00시. 공휴일은 제외), 또는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참가신청 하신 후 참가비를 완납하시면 참가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간단한 참가신청방법 : 휴대폰 문자로 성명, 섬학교(7월), 그리고 가능하면 이메일 주소를 전화 010-9794-8494/010-5302-4256번으로 보내주시면 바로 처리해드립니다(준회원 대우)^^

▷섬학교 카페 https://cafe.naver.com/islandschool에도 꼭 놀러오세요.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https://www.huschool.com/을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전라도 섬맛기행> <당신에게, 섬> <신안>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금감원의 보험사 개인정보 보안강화 규정으로 여행자보험 단체가입이 까다롭고, 다른 보험에 가입한 경우 중복보장이 안 되는 등 실익이 크지 않아 단체여행자보험 가입을 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하신 분은 개인 가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관광버스는 보험 가입이 돼 있습니다.

* 화면 상, 하단에 위치한 <참가신청>아이콘을 누르시면 신청서 작성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이 답사는 모든 일정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참가취소시에는 다음과 같은 환불규정이 적용됩니다.

- 출발 7일전 취소시 100% 환불
- 출발 6일전 취소시 90% 환불
- 출발 5일전 취소시 80% 환불
- 출발 3-4일전 취소시 70% 환불
- 출발 2일전 취소시 60% 환불
- 출발 1일전 취소시 50% 환불
- 출발 당일 취소시 환불 불가
* 학교별 최소 인원 미달시에는 휴강될 수 있으며 휴강시에는 참가비가 전액 환불됩니다.

 

 

학교소개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섬왕국 전라남도의 <가보고 싶은 섬>가꾸기 자문위원이며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으로, 섬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15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전라도 섬맛기행>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는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물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섬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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