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소개

섬학교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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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    장:  강제윤(시인, 섬여행가)
    주    제:  가을 선경(仙境)...그 많던 신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    간:  2020년 11월 7(토)-8(일)일, 1박2일
    참가비:  29만원

강의계획

가을 선경(仙境)...그 많던 신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20년 11월 섬학교는 군산 <선유도(仙遊島)>

 

*코로나19 안정화 되는 상황을 전제로 출발 준비 중입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또는 본인이나 가족이 14일 이내 국내외 전염지역 방문을 한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자는 코로나19 관련,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와 대화 자제, 꼼꼼하게 손씻기, 기침-재채기 예절 등 예방수칙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중국 송나라 때 저술된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군산의 선유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1123년 송나라 사신단 200여 명이 몇 척의 배에 나눠 타고 가거도, 홍도, 비금도 등을 거처 고려를 방문하는데, 개경에서 고려의 환영단이 마중 나온 곳이 바로 선유도입니다. 그때 환영단의 대표로 선유도까지 왔던 사람은 놀랍게도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입니다.

 

선유도가 역사의 무대였던 셈이지요. 선유도에는 왕의 임시 거주지인 행궁까지 있었습니다. 고려 수도 개경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예성강 입구의 국제무역항 벽란도가 그렇듯이 해상왕국 고려가 섬들을 얼마나 가치 있게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오룡묘(五龍墓)라는 선유도의 신전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오룡묘는 고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 사신과 선원들까지 기도를 바치던 국제적 신전이었고 지금까지 1천 년 이상을 이어온 대단한 신전이지요. 해상왕국시대 역사의 무대인 동시에 신선들이 놀다 갔던 전설의 섬, 선유도(仙遊島). 이제는 육지와 다리가 놓여 옛 정취를 많이 잃었지만 그 수려한 경관은 여전합니다.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 제94강은 2020년 11월 7(토)-8(일)일, 1박2일 일정으로 군산의 선유도로 떠납니다. 아울러 한반도의 생태계는 물론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조성한 생태 전시공간인 서산의 국립생태원도 방문합니다. 역사 속으로 떠나 신선들과 함께 놀다올 만추 여행에 초대합니다.

 

▲그 많던 신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94강, 11월의 답사지인 군산 <선유도>와 서천 <국립생태원>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옛날 군산에 갔다

“세월이 더하기를 할수록

삶은 자꾸 빼기를 하고

욕심이 더하기를 할수록

행복은 자꾸 빼기를 한다”

 

선유도(仙遊島) 가는 길, 우연히 들른 군산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2층 커피숍, 탁자에 붙어 있던 여주인의 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다. 신선이 놀다간 섬. 선유도는 그 이름값을 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선유도는 군산의 모태가 됐던 섬이다. 군산은 본래 군산이 아니었다. 선유도의 본래 이름이 군산도(群山島)였다. 군산이란 바다 한 가운데 산들이 무리지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태조 때 군산도에 수군진이 설치 됐는데 세종 때 지금의 군산 땅, 옥구군 북면 진포로 수군진을 옮기면서 진의 이름도 함께 가져갔다. 그래서 진포는 군산포진이 되었고 이름을 빼앗긴 군산도는 고(故)군산도가 되었다가 마침내 선유도가 됐다. 국제공항이 들어서 있는 영종도의 이름 유래와 비슷하다. 본래 경기도 남양에 있던 영종도진이 옮겨가면서 이름도 가져가 영종도가 됐다. 지금 선유도 인근의 섬들을 고군산군도라 부르는 것은 그때의 흔적이다.

 

섬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지나간 100년 동안 군산 연안에서만 모두 12개의 섬이 사라져 버렸다. 1880년대 71개였던 군산 연안의 섬이 현재는 59개에 불과하다. 섬을 없애버린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1890년대 초반 선혜청 당상관 이완용에 의해 만경강 인근 바다에서 간척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군산 앞바다에서만 5차례의 대규모 간척이 있었다.

 

새만금 지역 간척의 시작이 외세를 등에 업은 매국노의 손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오식도, 내초도, 입이도, 무의인도, 가내도, 조도, 비응도, 장산도 등 앞선 네 번의 간척으로 사라진 섬들은 대부분 섬의 존재를 증거 할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새만금 간척은 4대강 사업과 함께 국토에 자행된 단군 이래 최대 재앙이다. 새만금 간척으로 4만ha의 갯벌이 사라져버렸다. 갯벌의 생산력 가치는 농토의 100배다. 하지만 새만금 갯벌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대를 이어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일순간에 잃어버렸다.

 

심산유곡과 더불어 유토피아의 한 원천이었던 섬. 이제 더 이상 섬도 꿈꾸던 섬은 아니다. 개발의 탐욕으로 섬은 상처를 입고 섬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육지 사람들의 위락 시설로 바뀌어 간다. 섬을 잃는 것은 이상향을 잃는 일이다. 새만금 갯벌이 죽은 뒤 고군산(古群山) 군도(群島)의 많은 섬들도 고난에 직면해 있다. 삶의 터전이던 바다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는 해산물들의 3분의 2 이상이 갯벌이나 염습지에서 생의 일부를 보낸다. 갯벌이 사라졌으니 어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된 고군산군도의 섬들Ⓒ섬학교


오랜 세월 신선이 노닐던 섬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 면적 2.13㎢의 크지 않은 섬 선유도는 오랜 세월 신선이 노닐다 갈 만큼 선경이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지금은 그 경관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선유도는 여전히 서해의 보석이다.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이다.

 

선유도는 고려시대, 고려와 송나라 간 항로의 중간 기항지였으며 최무선 장군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해전의 현장이기도 했다. 또 임진왜란 때는 명량해전을 치른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들었던 곳이다. 송나라 때 사신 서긍이 쓴 고려방문기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선유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1123년 송나라 사신단 200여 명이 몇 척의 배에 나눠 타고 가거도, 홍도, 비금도 등을 거처 고려를 방문하는데 고려왕조의 환영단이 마중 나온 곳이 바로 선유도다. 그때 환영단의 대표로 선유도까지 왔던 사람은 놀랍게도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다. 선유도가 역사의 무대였던 셈이다.

 

"6일 정해일 아침 밀물을 타고 항해하여 오전 8시쯤에 군산도에 정박하였다. 그 산은 12봉우리가 서로 이어져 성처럼 원형으로 둘러쳐 있다. 6척의 배가 와서 맞이했는데, 무장한 병사를 싣고 징을 울리고 고동 나팔을 불며 호위하였다. 배가 섬으로 들어가자 연안에는 군기를 잡고 늘어선 자가 1백여 인이나 되었다.”

 

해상왕국답게 고려는 외국 사신단의 환영행사를 섬에서 치를 만큼 섬을 중요시 했었다.

 

“사신단이 동접반 김부식 등과 군산정에서 만났다. 그 정자는 바닷가에 있고 뒤로 두 봉우리에 의지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관문 밖에는 관아 십여 칸이 있고, 서쪽 가까운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와 지복사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崇山行宮)이 있고, 전후좌우에는 주민 십여 가구가 있다.”

 

▲선유도 천년의 신전, 오룡묘Ⓒ섬학교


천년의 신전

선유도에는 왕의 임시 거주지인 행궁까지 있었다. 고려 수도 개경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던 예성강 입구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가 그렇듯이 해상왕국 고려가 섬들을 얼마나 가치 있게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증표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오룡묘(五龍墓)라는 선유도의 신전은 그때도 있었다. 오룡묘는 1천 년 이상을 이어온 대단한 신전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토속 신전에 대한 대우는 참으로 야박하기 그지없다. 선유 3구 밭 너머 마을에서 망주봉을 돌아가면 새터마을이다. 새터마을에서 올라가는 망주봉 길 중턱에 오룡묘가 있다. 예전에는 길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숲이 울창해져 길마저 사라지고 없다. 바위에 매달린 밧줄을 잡고 암벽등반을 한 뒤에야 간신히 오룡묘에 이를 수 있다. 오룡묘는 1990년, 마지막 무당이 죽은 뒤부터 오랫동안 돌보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오룡묘에는 아직도 윗당, 아랫당 두 개의 당집 건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랫당에 봉안 되었던 명두 아가씨, 최씨 부인, 성주 등 다섯 토착신의 화상은 도난당해 그 자리가 비어 있다. 기울어 가는 당집은 노거수 그늘에 파묻혀 소멸의 시간을 기다린다. 가여운 신들. 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섬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살아온 토착 신들. 당집은 오랜 세월 섬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풍어를 이루도록 도와준 신들을 모시던 신전이다. 지금 당집에 살던 신들은 어디론가 쫓겨 사라지고 말았다.

 

▲천년왕국의 주인을 기다리는 망주봉Ⓒ섬학교

 

선유도는 본래 3개의 다른 섬이었으나 중앙에 긴 모래톱이 쌓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선유도에는 여러 산이 있지만 다들 200m가 넘지 않는 낮은 산들이다. 방파제 공사로 많은 모래가 유실되었으나 선유팔경의 하나인 명사십리 해변에서 보는 일몰도 여전히 장관이다. 선유 2구와 3구 사이, 기러기가 내려앉은 모양의 모래톱 평사낙안의 풍경 또한 비경이다. 선유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이 망주봉(望主峰 152m)이다. 단단한 바위산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전달된다. 주인을 기다리는 봉우리, 선유도의 주산 망주봉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전설이 내려온다.

 

망주봉의 전설

하나는 충신 버전이다. 선유도에 유배된 관리가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의 한양에 있는 왕을 사모하였다 해서 망주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하나는 번외 버전이다. 이 버전은 <정감록>에 젖줄을 대고 있다. <정감록>은 이씨 조선이 멸망한 뒤 정도령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몇 백 년을 다스리고 그 후 조씨의 가야산 도읍 몇 백 년이 계속된 뒤 범씨의 완산 도읍이 시작된다고 예언한다. 선유도 망주봉은 범씨 완산 도읍 천년왕국의 섬나라 버전이다. 그 천년왕국의 주인 범씨 왕을 기다리는 산이 망주봉이다. 나그네는 두 번째 버전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에 섬은 자주 착취와 수탈이 없는 이상향으로 꿈꾸어지곤 했다. 진정한 백성의 나라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열망이 망주봉의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옛날 군산(群山)으로 간다.Ⓒ섬학교

 

신선의 세계, 선유팔경

선유도에도 선유팔경(仙遊八景)이 있다. 옛날부터 각 지방의 빼어난 경관들은 팔경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부쩍 그 숫자가 더 늘었다. 어느 지역엘 가나 팔경이 있다. 더러 십경이나 십이경도 있지만 대다수는 팔경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방책일 것이다. 선유팔경의 역사는 생각 없이 급조된 팔경들보다 역사가 깊다. 그런데 어째서 팔경일까. 선유팔경이나 대한팔경, 관동팔경, 단양팔경 같은 팔경의 원조는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하필 팔경인 것은 주역의 8괘와 연관이 있다. 춘하추동 4계절에 명승지를 음양으로 두 개씩 배정해서 팔경으로 정한 것이다. 소상(瀟湘)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양자강의 두 물줄기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말한다. 소상의 아름다운 풍경은 많은 시인들이 노래해 왔다. 팔경의 전통이 하나의 미학으로 확립된 것은 북송 때 화가들이 <소상팔경도>를 그리면서부터다. 이후 동북아에서 소상팔경은 관념 산수시대 최고의 미학이 됐다.

 

선유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은 망주봉 아래 바다에 형성된 모래톱이 망주봉에서 바라보면 모래사장으로 날아드는 한 마리 기러기 형상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선유팔경인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峰) 또한 중국 사천성의 무산십이봉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선유도 안내 팜플렛은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峰)을 방축도, 명도, 말도 등 고군산 섬들의 산봉우리 12개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병사 혹은 무사 모양 같아서 무산이라고 했다면서 무(武)가 아니라 춤출 무(舞)를 쓰는 것은 모순이다. 설명은 견강부회 같다. 실상 무산십이봉은 신선 사상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러니 무(武)도 무(舞) 아닌 무(巫)를 쓰는 것이 옳다.

 

동양에서 신선정원(神仙庭園)을 만들 때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은 그 골격이 되는 산이다. 본래 무산(巫山)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우산현(巫山縣)의 남동쪽 바산산맥(巴山山脈) 속의 아름다운 봉우리 이름이다. 그런데 그 형세(形勢)가 무자(巫字)와 같다 해서 무산이라 일컫는다. 거대한 산봉우리가 첩첩으로 하늘을 가리고 큰 강이 그 사이를 흘러 무협(巫峽)을 이루며, 12개의 봉우리 밑에 신녀묘(神女廟)가 있다고 믿어진다. 동양의 정원에서 산이나 연못의 섬 등으로 사용하는 석가산(石假山)도 이 형태를 모방한 것이다.

 

선유도는 바로 곁의 섬, 장자도, 무녀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장자도는 또 대장도와 연결되어 있다. 4개의 섬은 이미 하나다. 4개의 섬 모두를 걸어볼 수 있다. 작은 섬들이니 네 섬 모두를 걷는데도 하루면 족하다. 길이 평탄하여 자전거를 타기도 좋다. 자전거로 돌면 몇 시간 걸리지 않는다. 선유도는 이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됐다. 더 이상 배를 타고 가는 섬이 아니다. 다리가 놓이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하지만 선유도는 여전히 서해 최고의 비경 중 하나다.

 

▲갓 잡아온 멸치는 멸막의 가마솥에서 한번 삶은 뒤 말려서 출하한다.Ⓒ섬학교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은 한반도의 생태계를 비롯하여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조성한 생태 연구, 전시, 교육 공간이다.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은 살아있는 생태전시공간으로, 식물 1,900여 종, 동물 280여 종이 21,000㎡가 넘는 공간에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기후대별 생태계를 최대한 재현함으로써 기후와 생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이다.

 

5개 구역으로 구분된 야외전시공간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습지생태계에서부터 세계의 다양한 식물, 고산에 자생하는 희귀식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슴류의 서식공간, 연못생태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국립생태원은 전문생태교육기관으로 생태원의 다양한 전시·연구시설과 주변 생태지역을 통한 생생한 생태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생태를 주제로한 다양한 전시와 행사,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한국관광공사]

 

2020년 11월 7(토)-8(일)일, 섬학교 제94강 <선유도>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7일(토)>

07:00 서울 출발(0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94강 여는 모임

-서천 <국립생태원> 도착 관람 

-점심식사(군산에서 꽃게간장게장백반)

-무녀도1구(선유대교 아래) 도착

-첫째날 섬 걷기(6km)

무녀도선유대교→선유1구→옥돌해수욕장→선유2구→장자대교→낙조대→장자도포구→대장교→ 장자할매바위→선유도숙소

-숙소 도착 및 자유시간

-저녁식사 겸 뒤풀이(망주봉 식당에서 생선회와 매운탕을 곁들인 저녁식사)

20:00 자유시간 및 취침(다인실)

 

<11월 8일(일)>

07: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망주봉 식당에서 섬밥상)

-오룡묘 탐방

-자유시간

-선유도 출발

-군산 도착

-점심식사(군산에서 남도백반)

-군산 어시장 장보기

15:00 서울 향발. 제94강 마무리모임

*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1월의 섬학교 <선유도> 걷기 지도Ⓒ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마스크,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슬리퍼,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기침 예절, 손 청결 등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실손보험 미가입자는 반드시 여행자보험에 가입해 만일에 대비하세요. 참고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는 여행자보험 사이트를 안내합니다.

http://openyourplan.com/OP/

*환경 살리기의 작은 동행, 내 컵을 준비합시다(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

 

▷11월 섬학교 제94강 <선유도> 참가비는 29만원입니다(지상 왕복교통비, 5회 식사 겸 뒤풀이, 1일 숙박비,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참가비 송금계좌 국민은행 730601-04-041406 문화문 인문학습원). 버스 좌석은 참가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은 현재 화면 상, 하단에 위치한 <참가신청> 아이콘을 누르시면 신청서 작성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회원가입 바로가기

▷참가문의는 전화 050-5609-5609/010-9794-8494번(월∼금요일 14:00∼18:00시. 공휴일은 제외), 또는 이메일 huschool@naver.com을 이용해주세요.

▷참가신청 하신 후 참가비를 완납하시면 참가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간단한 참가신청방법 : 휴대폰 문자로 성명, 섬학교(11월), 그리고 가능하면 이메일 주소를 전화 010-9794-8494/010-5302-4256번으로 보내주시면 바로 처리해드립니다(준회원 대우)^^

▷섬학교 카페 http://cafe.naver.com/islandschool 에도 꼭 놀러오세요.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을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전라도 섬맛기행> <당신에게, 섬> <신안>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금감원의 보험사 개인정보 보안강화 규정으로 여행자보험 단체가입이 까다롭고, 다른 보험에 가입한 경우 중복보장이 안 되는 등 실익이 크지 않아 단체여행자보험 가입을 하지 않습니다. 꼭 필요하신 분은 개인 가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관광버스는 보험 가입이 돼 있습니다.

 

* 화면 상, 하단에 위치한 <참가신청>아이콘을 누르시면 신청서 작성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이 답사는 모든 일정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참가취소시에는 다음과 같은 환불규정이 적용됩니다.

 

- 출발 7일전 취소시 100% 환불

- 출발 6일전 취소시 90% 환불

- 출발 5일전 취소시 80% 환불

- 출발 3-4일전 취소시 70% 환불

- 출발 2일전 취소시 60% 환불

- 출발 1일전 취소시 50% 환불

- 출발 당일 취소시 환불 불가

* 학교별 최소 인원 미달시에는 휴강될 수 있으며 휴강시에는 참가비가 전액 환불됩니다.

 

학교소개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섬왕국 전라남도의 <가보고 싶은 섬>가꾸기 자문위원이며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으로, 섬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15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전라도 섬맛기행>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는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물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섬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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